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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 "한국은 전통음악 살아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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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02회 작성일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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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내한공연 사카모토 류이치 "지그재그식 음악인생은 호기심 많은 탓"
 
 

사카모토 류이치(48)의 국내 팬페이지는 3월 초부터 술렁였다. 「내한공연을 한다더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남짓, 첫 내한공연이 지난 4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지금 팬페이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관람했다』 『평생 못잊을 것 같다』는 글들이 가득하다.
피아노를 기본으로, 여러 악기와 오케스트레이션, 효과음을 이용해 「장르 구분이 쓸모없는」 음악을 해온 사카모토는 「피아니스트」라 불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선 「영화음악가」로 더 이름났다. 그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마지막 황제」 영화음악으로 1988년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동양 음악가로는 처음이었다.
최근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철도원」 음악도 그의 작품이다. 공연을 앞둔 4월 26일 그를 만났다.
인터뷰 약속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공연기획사가 시각과 장소를 정하느라 애를 먹는 눈치였다. 애초 『점심을 함께하면서 기자 여럿과 함께 만난다더라던』 말이 『여러 명과 동시에 이야기하는 건 싫다더라』 『인터뷰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계속 바뀌었다. 그의 내한공연을 취재하러 온 일본 방송국팀이 공연 직후 예술의전당 무대 뒤에서 그를 인터뷰하려 했으나 그는 『숙소인 하얏트호텔에서 하겠다』고 고집했다.
하여튼 그를 만나기도 전에 「꽤 까다로운 사람」이란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숙소인 서울 하얏트호텔로 가면서도 혹시 길이 막혀 늦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그는 호텔에서 두번째로 비싼 「디플로매틱 스위트」에 방을 잡아놓고, 인터뷰를 위해 그 한단계 아래인 「이그제큐티브 스위트」 하나를 따로 마련해놓고 있었다.
●한국 공연 오랫동안 기다려와
그가 약속시간을 넘겨가며 한 케이블TV와 인터뷰를 계속했기 때문에 마주 앉기까지는 15분 넘게 호텔 복도에서 기다려야 했다. 자연스레 센 머리를 어깨에 찰랑거릴 듯 단발로 길렀고, 검정 실크 셔츠에 블랙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국 공연을 기다려왔습니다. 감격스럽습니다.』 그는 첫 공연 소감을 그렇게 말했다. 소파 끄트머리에 살짝 걸치듯 앉아 얌전히 다리를 꼰 모습하며 소근거리듯 하는 말투가 겸손한 느낌을 줬다.
-한국에 매니아들이 많고, 이번 공연도 매진이 됐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솔직히 내 음악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매진 소식도 의외입니다.』
실제 그의 이번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한국까지 따라온 일본 극성팬들도 꽤 있었지만, 우리나라 팬들, 특히 20대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앞자리에선 록그룹 공연을 방불케 하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지나치게 난해한 음악부터 귀가 간지러운 CF 음악까지 스펙트럼 폭이 무척 넓은 편인데요.
『제 음악은 난해하고 쉬운 음악, 유럽 음악과 동양 음악, 현대 음악과 과거 음악이 복잡하게 섞여 있습니다. 20년 이상 「지그재그」 식으로 음악을 해왔지요. 제 팬들이 새로 나온 CD를 살 때면 무척 리스키(risky)하다고 해요. 이번엔 또 어떤 음악일까 해서 말이지요.(웃음)』
그의 음악을 굳이 한가지 형용사로 표현하자면 「난해한」 또는 「불가해한」 이란 단어를 쓸 수 있다. 일본서 700만장 가까이 팔렸다는 최근 앨범 「BTTB(Back To The Basic)」도 첫 몇곡만 「대중적」일 뿐 후반부로 갈수록 어렵기 그지 없다. 피아노를 해체해놓고 줄을 긁거나 줄에 공을 퉁겨서 나는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기도 했다.
-한 가지 음악을 오랫동안 파고드는 음악가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한 가지를 싫증 안 내고 오래도록 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는 『어렵겠지만 이젠 내 음악 스타일을 하나로 정하는 일이 남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살 때 피아노를 배워 열살 때 작곡을 해낸 그는 어려서 비틀즈부터 베토벤까지 다양한 음악적 관심을 보였다. 11세부터 대학교수로부터 작곡 수업을 받았고, 대학에선 작곡과 전자음악, 민속음악을 전공했다. 이어 70년대 말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라는 트리오를 결성, 독일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원조」 테크노 사운드를 이끌었다.
그는 지난 98년 초 음반 홍보차 내한한 적이 있다. 그때 그를 좋아하는 국내 대중음악 작곡가나 가수들을 만난 일이 있다. 이번 공연 관람석에도 국내 대중음악가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대중음악의 주류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별 다른게 없는 것 같습니다. 대중음악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은 소수겠지만, 그 분들은 아주 고급스런 음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특히 국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한국은 전통음악이 살아 있는 나라다. 그걸 현대적 요소와 결합하면 재미있지 않겠느냐』면서 『일본 민요는 박물관에 간 지 오래』라고 했다.
그는 또 『김덕수씨가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었다. 사물놀이패를 이끄는 김덕수씨와 함께 작업한 일이 있다고 한다. 아는 대로 몇가지 대답해주는데, 『한국에서는 국악이 어떤 대접 받느냐』 『젊은이들도 국악을 좋아하느냐』 면서 질문을 이었다. 자신 말대로 「호기심이 정말 많은」 듯했다.
-최근 앨범 「BTTB」가 그렇게 큰 인기를 끈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면 앨범마다 대히트를 칠 텐데.(웃음) 아마도 CF 음악인 「에너지 플로우(Energy Flow)」 때문 아닐까요. 그게 누구나 듣기 쉬우니까요.』 「에너지 플로우」는 담백하고 깔끔한 「여성 취향」 피아노 소품. 이런 곡만 들으면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란 말이 나올 법하다. 『에너지 플로우는 내 음악 중 중급 정도밖에 안됩니다. 훨씬 좋은 곡이 많은데 이 곡이 인기인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최고의 곡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앞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대답해 방 안에 있던 그의 일행이 모두 웃었다.
●영화음악은 내 음악의 절반도 안돼
-영화음악의 비중은 얼마나 두십니까?
『영화음악은 제 음악의 절반 이하입니다. 한 3분의 1 정도라고 할까. 영화음악은 영화를 좋게 하기 위한 「일부」이기 때문에 내 고집이나 주장을 할 수가 없어요. 계속 감독과 대립해야 하죠. 결국 내가 지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가 나왔을 때 그 보람은 아주 큽니다.”
그는 자신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마지막 황제」의 베르톨루치 감독과 가장 많이 싸웠다고 했다. 영화 「리틀 부다」 마지막 장면의 음악은 무려 5번이나 새로 작곡했다고 한다.
『첫번째 곡이 「베스트」였는데 베르톨루치 감독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썼지요. 그랬더니 「이건 너무 슬프다. 슬프면서도 희망을 주는 음악이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그는 『당신 얼굴 두번 다시 보지 않겠다』며 싸운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했다.
자리를 파하는 데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성격이 까다로운 편이세요?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그렇게 묻고서는 「정말 까다롭다면 기분 나빠하겠다」 싶어 얼른 말을 만들어냈다. 『피아노란 악기가 성격을 그렇게 만드나요?』
그가 일본어로 뭐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가 「별걸 다 묻는군」하는 투였던 것 같다. 그러더니 『내 성격은 내 음악처럼 무척 다면적이어서 나 자신도 나를 다루기가 힘들다』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애초 약속보다 인터뷰가 30분 가까이 길어져 있었다. 그는 애초 약속시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타입인 것 같았다.
(*한현우 문화부 기자 hw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