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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日음악가 "나는 전생에 프랑스인" 믿은 이유

오수현 기자
입력 : 
2021-03-20 17:58:03
수정 : 
2021-03-20 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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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流의 원조 류이치 사카모토 `레인`
어릴적 자신이 佛작곡가 드뷔시가 환생한 것이라 믿어
클래식학교 도쿄예술大 나왔지만 팝밴드 YMO로 데뷔
영화음악가로 변신해 대성공…1988년 `마지막황제`로 아카데미 작곡상 수상
※ 꿀잠뮤직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듣기에 좋은 음악을 추천해 드리는 코너입니다. 매주 한 곡씩 꿀잠 부르는 음악을 골라드리겠습니다.



[꿀잠뮤직] 1990년대 중엽 어둠의 경로로 들어오는 일본 음악잡지를 구했다. 정확한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일본 퓨전재즈밴드 '카시오페아' 또는 '티스퀘어'의 인터뷰 기사였을 것이다. 고교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던 터라 더듬더듬 기사를 읽어내려갔는데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존경하는 뮤지션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멤버 모두 이구동성으로 '판본용일(坂本龍一)'이라는 음악가를 꼽았다.

'판본용일이 도대체 누굴까. 우리나라엔 안 알려졌지만 일본에서 엄청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냥 이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나중에 판본용일이 누군지 알고나선 헛웃음이 나왔다. 류이치 사카모토(69)의 한자 표기가 판본용일이었던 것이다. '용일'이 류이치, '판본'이 사카모토. 일본식으로 표기하면 사카모토 류이치가 맞지만, 워낙 글로벌하게 명성을 얻은 음악가이다보니 성(姓)을 뒤로 둔 류이치 사카모토로 해외에 알려졌다.

사진설명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는 1983년 영화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로 영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1987년 영화 '마지막 황제'로 미 아카데미 작곡상과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곡상, 그래미에선 영화·텔레비전 음악상을 받은 세계적인 음악가다. 한마디로 일류(日流)의 선두주자였다.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난 사카모토는 3살 때부터 피아노를, 10세 때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클래식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지만 듣는 음악의 폭은 꽤 넓었다. 바흐에 빠졌다가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에 심취하기도 하고, 또다시 클래식으로 돌아와 인상주의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는 중2 때 드뷔시의 현악 사중주곡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오랫동안 자신이 드뷔시가 환생한 것이라고 거의 진심으로 믿었다고 한다. 실제 사카모토의 음악을 듣다보면 펜타토닉 스케일(5음 음계)을 즐겨 사용하는 등 드뷔시의 음악적 요소가 여러군데서 엿보인다.

아무튼 사카모토는 어린 시절 선생님이 시키는 데로 클래식 음악만 듣고 연주하는 수동적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의 명문 클래식 음악학교인 도쿄예술대 작곡과를 나왔음에도 영화음악, 팝, 클래식, 전자음악 등 폭넓은 장르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카모토의 음악 커리어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78년 결성한 팝밴드 YMO(옐로매직오케스트라)를 출발점으로 한다. 이 밴드는 1집부터 미국, 유럽 등 해외투어를 할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고, 'Behind The Mask'라는 곡은 나중에 마이클 잭슨과 에릭 클랩튼이 리메이크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YMO의 음악 장르를 굳이 따지만 로큰롤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대음악의 요소도 가미하는 등 꽤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한 밴드였다.

하지만 사카모토의 음악 커리어는 영화음악으로 정점에 올랐다. 그는 1983년 만들어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영화음악가로 데뷔를 했는데 시작부터 대박이 났다.

사카모토는 원래 이 영화의 음악 담당으로 캐스팅된 게 아니었다. 오시마 감독은 사카모토를 만나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했다. 아마 YMO 활동으로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얼굴이 알려진 뮤지션이니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카모토는 "배우로 출연하는 건 좋아요. 대신 음악도 하게 해주세요"라고 역제안을 했고, 오시마 감독은 흔쾌히 수락했다. 사카모토는 후일에 "영화음악 같은 건 해본 적도 없고 해보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언뜻 생각나서 입에서 나오는 데로 해본 말이었다"고 했다. 그냥 혀가 움직인데로 얘기한 건데, 이게 영화음악가 사카모토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엉겹결에 영화음악가로 데뷔한 사카모토는 이후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특히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가 1983년 칸 영화제에 출품돼 찾은 칸에서 이탈리아의 거장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만난 것은 사카모토 음악 인생의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시 베르톨루치 감독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구상 중이라며 1시간가량 자신이 구상 중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사카모토에게 들려줬다.

'마지막 황제'는 3년 뒤인 1986년 촬영에 들어갔는데 베르톨루치는 사카모토에게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요청했다. 마지막 황제 푸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일본인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이었다.

베르톨루치는 원래 이 영화의 음악을 사카모토에게 맡길 생각이 없었다. 이탈리아의 거장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이 영화에 욕심을 내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모리코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황야의 무법자' 등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하며 영화음악 작곡가로 입지를 다진 상황이었고 같은 이탈리아인 감독이 찍고 있는 영화이니 욕심이 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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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촬영이 끝난 지 반년이 지난 시점에 사카모토에게 영화 음악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반년이란 시간이면 아마 돌고돌아 사카모토에게 의뢰가 온 것일 수도 있다. 베르톨루치가 원래 점찍었던 작곡가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카모토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 사카모토는 거의 매일 철야작업을 한 끝에 44곡을 만들어 보냈다. 마지막 황제는 198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홉 개 부문 상을 휩쓸었고, 여기엔 당연히 작곡상(best original score)도 포함됐다.

마지막 황제의 메인 테마곡인 '레인(Rain)'을 듣다보면 사카모토가 아니었다면 이런 음악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리코네가 사운드 트랙을 맡았다면 특유의 가슴 저미는 서정미는 가득했겠지만, 사카모토가 만들어낸 아시아적이면서도 서양적인, 동시에 고독과 우아함이 묻어나는 사운드를 듣긴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 사카모토는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임에도 중국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보편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다. 오히려 사카모토가 추구한 건 파시즘 광풍이 몰아쳤던 20세기 초반의 암울한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또 서양 오케스트라를 기본 악기로 사용하면서 우울한 시대상을 굉장히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게 풀어냈다. 사카모토는 마지막 황제 음악을 쓰면서 독일 표현주의를 염두에 뒀다고 밝히기도 했다. 독일 표현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독일에서 시작된 예술사조로 이성에 대한 회의와 불안감, 초조함을 강렬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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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는 레인에서 피아노를 굉장히 오케스트라적으로 활용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레인을 듣다보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피아노의 활용이 전형적이지 않고, 현악기 적이면서도 타악기 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이런 가운데 바이올린의 음역을 최대로 활용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선율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암울한 세기말적 시대상을 고스란히 표현해 낸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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