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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의 증조할아버지 'YMO'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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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610회 작성일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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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짜 ‘엔터테이너’는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배워라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ato)는 누구 

 

내가 류이치 사카모토(이하 사카모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쯤이었다. 팝칼럼니스트가 꿈이었던 당시에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등의 전자음악에 매료되었다가 이러한 미디(MIDI)에 대한 관심은 한국으로 눈을 돌렸고 당시 한국에서 미디음악의 3인방이었던 정석원(015B), 신해철, 윤상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이 중에서 윤상을 통해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존재를 알았고, 그의 전위적인 음악을 곧 내 고막 속에서 책동하게 되었다. 이후 윤상을 이어서 토이의 유희열 또한 사카모토의 음악을 오마주(homage)한 곡(토이 5집에 수록된 ‘안녕 이젠 안녕’)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럼 간략한 그의 이력을 보도록 하자. 

 

사카모토는 “1952년 1월 17일 일본의 나가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비틀즈에서부터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이러한 취향은 현재의 그의 음악을 규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열한 살 되던 해인 1963년 동경 예술대학의 마츠모토 교수에게서 클래식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후 1971년 그는 동경예대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고 이어 전자 음악과 민속 음악 작곡으로 석사 학위까지 따내게 된다.”(사카모토 팬페이지 http://www.silverain.org ) 한마디로 그의 본격적인 데뷔 전까지는 ‘딴따라’의 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음을 알 수 있다. 

 

테크노바에서 춤추는 그대여, 테크노의 증조 할아버지 YMO를 아시나 

 

사카모토는 학교를 마치고서 세션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차차 ‘딴따라’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다가 컴퓨터 음악을 접하게 되고, 이는 그에게 새로운 음악의 전환점이 되어주었으며 곧, 그 테크노 음악의 전설, YMO(Yellow Magic Ochestra)가 78년에 결성된다. YMO는 하루오미 호소노, 유키히로 다카하시와 함께 그룹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키보드를 갖고서 혁신적인 사운드를 보여준 이들은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의 음반챠트에서도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세계적인 테크노 밴드로 인정 받게 되었다. 그래서 테크노 음악의 두 진앙지로서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더불어 YMO가 동격을 이루고 있다. 테크노 장르에서의 그들의 선도적인 입지는 지금까지도 일본 음악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과 영감을 주고 있다. 

 

이를 반증해주는 게 바로 3년 전에 YMO의 헌정앨범인 ‘YMO REMIXES TECHNOPOLIS 2000-01’의 발매다. 이 앨범은 왕년의 YMO의 히트곡 들을 후배가수들이 리믹스한 앨범으로 그 후배가수들의 면면을 보면은 켄 이시이, 피치카토 파이브,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덴키 그루브, 토와 테이, 디제이 하세베 등의 YMO의 후손 격인 아티스트와 더불어 인기 힙합밴드인 드래곤 애쉬, 지금은 해체된 비주얼 락 밴드 루나 시(Luna Sea)의 스기조, 하드코어 밴드 매드 캡슐 마켓츠 등이 참가했다. 이들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을 볼 때 일본음악에 있어서 YMO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던지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는 이상하게도 YMO의 11장의 정규앨범 중 단 한 장도 발매되지 않았지만, 이 YMO 헌정앨범은 국내에 발매되어 들어볼 수 있다. 

 

특히, 앨범 수록곡 중에서 'SEOUL MUSIC'이란 곡이 있는 데 이곡은 사카모토가 80년대 서울 분위기를 곡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의 봄, 그 직후는  희망이 절망으로의 환원을 경험해야 하는 그 얼마나 허무하고 우울했던 시기였던가. 일본인의 감성에서 만들어진 멜로디는 또 다른 접근으로 한국 현대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사카모토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의 84년도 솔로 앨범 ‘Illustrated Music Encyclopia’에 수록된 A Tribute to N.J.P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N.J.P는 바로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이니셜이다. ‘전위적인’ 예술을 하는 사람들간에 영감이 통하는 것일까. 이 곡은 무형식의 멜로디에 백남준의 목소리가 녹음되어있는데 국내에서는 사카모토의 베스트 앨범 1996에 이 곡이 수록되어 들을 수 있다.) YMO가 이후 해체되고 몇 번의 재결합이 있었지만 영화음악가, 아티스트로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의 활동은 최근에 발매된 그의 베스트 앨범 ‘Moto.Tronic’을 통해서 들어가 보자. 

 

 

 

 

사카모토의 새로운 베스트 앨범, ‘Moto.Tronic’ 

 

류이치 사카모토의 새로운 베스트 앨범 'Moto.Tronic'은 여타의 베스트 앨범 기획이 그렇듯이 이 앨범 또한 사카모토의 히트곡(?)을 위주로 거기에 몇 개의 신곡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요즘의 ‘콩나물(악보)도 볼 줄 모르는’ 만능 반짝 가수들이 고작 앨범 몇 개를 내놓고서 그 중에 빠순이, 빠돌이를 위한 상업적 마케팅의 발로로 만들어지는 ‘베스트 앨범’과 그의 음악적 여정과 그 속에 뿌리와 변화가 휘감겨 있는 ‘베스트 앨범’을 똑같은 잣대로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먼저 트랙 리스트 별로 곡들을 본다면. 3번 트랙인 Energy Flow가 눈에 띈다. 이 곡 1999년 일본에서 BTTB(Back To The Basic)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이 곡은 오리콘 챠트(일본의 ‘빌보드 챠트’라고 불리울 정도로 공신력이 있다.)에서 8주동안 1위에 랭크 되었던 곡이다. 일본의 음반시장과 한국의 음반시장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나 일본에서 그 날고 긴다는 댄스그룹, 비주얼 락 그룹을 누른 이 곡은 소박한 멜로디가 흐르는 ‘피아노 연주곡’이었다. 이는 단순히 매니아층의 절대적 수요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본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해준다고 보아야 할 듯 싶다. 이러한 피아노 연주곡이 한국에서 50위에 들기도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인스트루멘털(Instrumental) 장르가 1위를 하는 것은 분명 한국의 음악가들에게는 부러운 일이다. 한국의 스타시스템은 ‘기본으로 돌아가서(BTTB:Back To The Basic)’ 각성할 필요가 있다. 

 

4번 트랙은 ‘Last Emperor’. 바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베를로루치 감독의 86년 작, ‘마지막 황제’의 O.S.T로 동양인으로는 첫 아카데미 O.S.T 부문 수상을 하여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된 계기를 마련해준 곡이다. 마지막 황제 이전에 국내에는 ‘감각의 제국’으로 알려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작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이 영화는 국내에서 TV로 방영되기도 하였고, 동네 비디오 구석에서 조금만 부지런을 떤다면 찾아 볼 수 있는 꽤 알려진 영화다.)의 영화음악과 폭풍의 언덕, 하이 힐, 리틀 부다(10번 트랙) 그리고 최근에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스테이크 아이즈의 영화음악도 담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사카모토는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의 첫 O.S.T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 영국가수 데이빗 보위와 함께 출연하였다. 

 

마지막으로 11번 트랙인 ‘Neo Geo’는 사카모토가 지향하는 월드 뮤직(world music)을 유려하게 드러낸 87년 작 앨범 타이틀 Neo Geo의 수록곡으로 이 앨범에서 그는 아프리카 토속음악, 팝, 일본전통음악 등을 민속악기와 최신 전자음악을 버무렸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어서 상호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스들이 이렇게 날줄과 씨줄이 되어 사카모토의 음악으로 촘촘히 엮어짐에 탄성을 자아낸다는 진부한 표현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특히, 베스트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 Risky는 펑크 음악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이기 팝(Iggy Pop)이 보컬을 맡아서 국적을 떠나 새로운 장(場)에서 음악인들간의 교호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자칭 ‘만능 엔터테이너’는 사카모토를 배워야 

  

일본음악에 대해서 일본문화개방과 결부되어 은근히 한국음악계가 경계를 하고 있지만, 한국가수인 보아의 진출 성공과 조용필 등의 선전에서 그렇게 위축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 되었듯이) 한국 음반시장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일본 음반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음악’ 한가지만으로도 실력이 ‘허접’한 가수들이 자칭 만능 엔터테이너라며 연기, 모델 등의 여러 영역까지 ‘호접(나비)’하려고 발버둥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미국 의류 브랜드인 GAP과 안토티오 미로의 패션모델, 뉴욕에 유명 백화점인 바니스 뉴욕의 모델로 활동했고,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RAIN에도 출연했으며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 영화의 배우로도 출연했다. 즉, 한국의 웬만한 자칭 ‘만능 엔터테이너’들보다는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진 않다고 보아야 겠다. 

 

기자가 십년 가까이 그의 팬으로서 기자는 이러한 그의 ‘만능 엔터테이너’ 기질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그는 3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고 하나 요즘 아이들도 이 정도 영재교육은 다 받지 않은가. 내 생각에 3살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니 그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는 보지는 않는다.) 노력으로 만들어 진 거라 본다. 그의 중심 축은 음악이다. 베토벤과 비틀즈의 변증법적인 결합과 거기서 파생된 전위적인 YMO의 활동은 고급스런 클래식 작곡에서부터 컴퓨터 게임 음악, TV 광고음악, 나까타니 미끼라는 신세대 일본 여가수와 DJ 스푸키의 앨범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개막공연 음악을 담당하는 등의 음악의 풍부한 스펙트럼이야 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적이다고 말할 수 있겠다. 콩나물도 제대로 못그리고, 읽을 줄도 모르면서 연기, 모델 등 여기저기 찝쩍되는 것은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들뢰즈의 비유를 들자면 사카모토는 세계를 향해 ‘고감도의 안테나(tete chercheuse)’를 펼친 ‘기관 없는 신체(CsO)’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조만간 곧 일본음악도 국내에 전면개방 될 것이다. 일본음악의 국내진입(혹은 침투)으로 한국음악계의 생존여부에 촉각을 곤두서고 있다. 기자가 보기에는 효과적인 대응책은 가짜 만능 엔터테이너를 찍어 되는 스타시스템의 바람을 빼고서 음악 하나부터 제대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이러한 축이 형성된다면 사카모토처럼 영화배우, 모델, 다방면의 자질을 갖춘 진짜 만능 엔터테이너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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