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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의 깊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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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65회 작성일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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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내한공연..두 대의 피아노로 마법같은 연주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어둠 속에서 묵직한 건반 소리가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조명이 켜지면서 두 대의 피아노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 대는 음악가가 직접 연주했고, 다른 한 대는 마치 유령이 앉아 있기라도 하듯 빈 의자 위에서 건반만이 춤을 췄다. 

 

2000년 첫 내한공연 이후 10년 만에 한국을 찾은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는 마술을 부리듯 두 대의 피아노 건반을 움직여 새로운 차원의 선율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9일 저녁 예술의전당에서 '플레잉 더 피아노(Playing the Piano)'라는 타이틀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의 내한공연에는 그를 위해 특수 제작된 '두 대의 피아노'가 또다른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랐다. 

 

마주보며 배치된 두 대의 피아노를 한 대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연주하고 맞은 편의 피아노 건반은 미리 프로그래밍돼 사카모토의 연주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악기회사 야마하가 개발한 '디스클라비어' 시스템이었다. 

 

이에 더해 음악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영상이 무대 뒤 스크린에 펼쳐졌다. 피아노 선율과 결합된 추상적인 이미지들은 보는 이의 철학적 사유를 자극했다. 

 

공연 초반에는 '아웃 오브 노이즈(Out of Noise)' 앨범의 '글레이셔(Glacier)'를 비롯해 실험적인 음악 세계가 펼쳐졌다. 건반을 느리고 묵직하게 두드려 소리와 소리 사이에 여백을 많이 뒀다. 

 

  

스크린에는 '그린란드의 기후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는 내용의 영어 자막이 떠올랐다. 평소 환경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그답게 관객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했다. 

 

이어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한 그는 최신작 '플레잉 더 피아노' 앨범에 수록된 서정적인 곡들을 들려줬다. 촉촉한 선율이 가슴 속 심연에 와 닿았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Lawrence)'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후 앙코르 무대에서 그는 두 대의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연주했다. 두 대의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클래시컬한 영역과 아방가르드한 영역을 넘나들며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날 공연에는 '스페셜 게스트'로 래퍼인 MC스나이퍼가 초청돼 이색적인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MC스나이퍼는 2004년 사카모토의 앨범에 '언더쿨드(Undercooled)'란 곡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라크전을 소재로 전쟁과 평화에 대해 노래한 이 곡은 '연평도를 생각한다'는 MC스나이퍼의 말처럼 최근의 한반도 상황과 맞물려 짙은 여운을 남겼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날 뛰어난 한국어 실력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간단한 인삿말은 물론이고 "다음곡은 00입니다"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를 소개합니다"처럼 긴 문장까지 구사하며 공연 내내 한국말만 썼다. 

 

잔잔한 연주로 두 시간 동안의 쉼 없는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거장이 남긴 깊은 울림에 화답했다. 

 

한편, 트위터를 즐겨 쓰는 그는 이날 공연 시작 전 공연이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된다고 알렸으며 공연이 끝난 뒤 한 팬은 일본에서 인터넷으로 공연을 봤다며 대단했다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