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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 performanc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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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89회 작성일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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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물결 속에서 꽃피운 환희의 소리...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그 누가 침략자의 소리라 할 수 있겠는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선조들이 만들어낸 제국주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정도의 감미로운 공연이었다. 같은 동양인끼리의 정서를 지녀 더욱 마음에 오는 소리일까? 이번 류이치 사카모토의 공연은 일본 문화의 개방에 조금이라도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금기시 되던 일본 음악이 한국 최고의 콘서트 홀이라는 곳에서 연주된 오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그의 공연은 시작되었고 모든 객석을 매운 관객들은 빨리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스피커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나 관객들은 그것이 류이치 공연의 시작임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하여 속삭이기 시작했고, 점차 스피커의 음량이 커지며, 조명이 어두워지자 그때서야 공연의 시작임을 알았다. 처음 류이치를 대한 것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함께 첫 시작부터 그의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졌으나 그러한 기대는 일순간 날아가 버렸다. 그는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 전 관객들에게 새로운 창조의 문을 열어 주었다. 힙합 그룹에서, 혹은 하드 코어 메탈 밴드에서나 볼 수 있는 레코드 플레이어의 스크래치를 이용한 시도! 

늘 창조의 정신을 잃지 않으며, 남보다 앞서 가려는 류이치의 스크래치는 레코드 플레이어와 CD를 이용해서 더욱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다. CD 플레이어의 뚜껑을 없애고 회전하는 CD위에 손을 얹어 스크래치를 하자 불량 CD를 넣었을 때의 튀는 소리와 흡사한 그러면서도 일렉트릭한 냄새가 가득한 사운드를 연출하였다. 

어느 정도의 전위적인 북유럽의 아방가르드를 듣는 듣한 착각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그의 새로운 시도가 끝이 나면서 그는 두 대의 피아노 앞으로 가 야마하 전자 그랜드 피아노 위에 앉아 자신의 히트곡 'OPUS'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한 음 한 음 짚어 가는 그의 손에서 조금 전 스크래치를 하던 클럽가 디제이 같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진지한 피아니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 더욱 신비로움에 휩싸이게 만들어 주었다. 일본의 국보급 아티스트로서의 손색없는 모습을 보며,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나 저런 아티스트가 나올까 하는 고민도 잠시 하는 순간 어느새 박수 소리가 들리며, 류이치의 인사와 함께 연주할 곡목을 소개하고 있었고, 'LORENZE AND WATSON'이라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류이치의 피아노 연주 모습을 보고 있는데 시야에 자그마한 빛이 들어왔다 사라지는 형상이 간혹 보였다. 필자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무대 위에 시선을 두었고 그 곳에 쓰인 글씨를 읽게 되었다. 상황은 일종의 퍼포먼스 형식으로 그가 연주를 할 때 무대 위 스크린(검정색 스크린)으로 글씨를 연출하는 것이다. 30초에서 1분 단위로 글씨는 계속해서 바뀌었고, 필자는 일단 그 글씨들을 적어 보기로 하였다. 

맨 처음 필자가 발견한 글씨부터 시작해 보겠다. 

"in, my arm, 그리고 중간에 □, 이러한 커다란 사각 상자가 나타난 후 다시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되는 글씨는 I'm holding, it, as if, it were, a newborn baby, the letters, continue, to accumulate, even now, like, snow, □ 그리고 또다시 사각 상자, falling in, early winter, they, accumulate, slowly, ceaselessly, have, you, ever, seen..." 

계속되는 글씨는 끝이 없었고, 류이치는 자신의 곡들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류이치의 연주는 역시 프로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명연으로서 모든 프로그램이 끝이 난 후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앵콜을 요청했고, 4번의 앵콜을 받아 준 류이치는 서투른 우리말로 '다음에 또 만납시다'라고 한 뒤 마지막 앵콜을 연주한 후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늘 새로운 시도로 기존의 팬들에게 충격을 던져주는 연주인으로서 언제나 앞을 보며 도전 의식을 가지고 연주를 한다는 류이치는 항상 새로운 모험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전형적인 일본인 냄새를 풍기는 외모와 헤어스타일이 전혀 반일 감정을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류이치는 무대에서 내려갔고 류이치의 피아노 소리만 귓속에 남아 그를 또 다시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게 만들고 있다.

 

글·사진 / 이유리(duke71@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