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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내한공연… 빙하 갈라지는 소리마저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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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52회 작성일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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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名不虛傳). 1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 일본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59)의 9일 공연은 그를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고 칭하는 것이 무지(無知)로 인한 무례(無禮)임을 확인해준 무대였다. 

  

이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조명은 약 5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어두워졌다. 완전한 흑암(黑暗) 속에서 사카모토는 발자국 소리로 등장했다. 그랜드피아노 두 대를 나란히 붙여놓은 무대에서 사카모토는 괴이쩍은 소음을 만들며 공연을 열었다. 첫곡 'Glacier'에서 냇물 소리가 졸졸 이어지는 가운데 그가 쇠줄로 피아노 현을 긁거나 이따금 건반을 두들겼다. 냇물 소리는 북극에서 녹음해 온 빙하 녹는 소리였다. 수천m 심해에서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를 내려는 것일까. 불분명한 소음과 피아노 현의 신경질적인 마찰음이 긴장을 높였다. 관객들의 (두 시간 내내 이런 연주일까 하는) 불안감도 급격히 높아졌다. 모두 그의 음반 'Out of Noise'에 실린 연주였다. 

 

6곡('曲'이란 표현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이 끝난 뒤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류이치 사카모토입니다" 하고 인사하자 관객들은 비로소 환영과 안도의 박수를 보냈다. 이후 그는 'Playing The Piano' 앨범 수록곡들로 레퍼토리를 바꿨다. 

 

한국 팬들에게 익숙한 'A Flower Is Not A Flower'부터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까지 사카모토의 피아노는 흐느적거리다가 꼿꼿이 일어서고, 머뭇거리다가 단호히 내지르며 객석을 사로잡았다. 피아노의 윤곽도 안 보일 만큼 어두워서 백발의 연주자는 마치 홀로그램으로 영사(映寫)된 이미지처럼 몽롱했다. 두 번째 앙코르에서 래퍼 MC스나이퍼가 등장해 관객들이 깜짝 놀랐다. 2004년 사카모토곡 'Undercooled'에 참여했던 그가 무대를 휘저으며 랩을 했다. 좀 뜬금없는 게스트였다. 사카모토는 음반 'BTTB' 수록곡 '아쿠아(Aqua)'로 무대를 맺었다. 빙하로 시작해 물로 끝난 유려하고 아름다운 무대였다.